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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욕조가 놓인 방 (이승우 소설)

by 버닝 아이스 🔥 2022.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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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욕조가 놓인 방

 

저자/출판사

이승우 / 작가정신

 


 

줄거리 및 요약

 

사실상 껍데기뿐인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한 남자두고 간 물건을 찾아가라는 여자의 말에 궁색한 당위성을 찾은 듯 그녀의 집으로 향한다남자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에 있는 그 여자는 아내가 아닌 다른 이성이다출장을 위해 떠났던 멕시코에서 우연한 계기로 만난 그녀에게 첫 눈에 호감을 느꼈고여행지에서 나눈 뜨거운 키스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신화적인 장소에서 만나 그녀와 나눈 신화적인 키스문신처럼 박힌 기억은 시시때때로 찾아와 우유부단한 당신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괴롭혔다.

 

한국에 돌아온 후 그녀와의 재회를 기대하진 않았다청천벽력같은 지방 발령 소식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운명의 이끌림’이었을까하필이면 좌천되어 떠내려간 유배지가 그녀가 사는 곳이었다엉망으로 구겨진 여행 팜플렛 귀퉁이에서 그녀의 전화번호를 찾은 그는 서둘러 손가락을 움직였다이렇게 H시에서 재회한 둘은 동거를 시작했고불과 한 달 만에 다시 이별했다.

 

밤마다 그녀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를 견딜 수 없던 남자가 결국 이 관계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었다방 가운데엔 욕조가 놓여있었는데 집에 돌아오면 그녀는 항상 욕조에 몸을 뉘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에는 그녀가 마치 침대에 몸을 맡긴 듯 편해 보이기만 했다.

 

외국에서 둘은 나란히 앉아 바다를 바라본 적이 있다때마침 바닷물 위에 달이 비췄고 그 모습은 마치 바다 위에 놓여진 다리를 연상시켰다남자는 달빛이 만든 길 위에 올라서면 어딘가로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냐고 물었고여자는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한다그리곤 ‘수장’을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죽음이라며 예찬한다.

 

그래서였을까욕조에 몸을 담그는 그녀의 반복적인 행위욕조 밖으로 넘쳐 흐르는 물소리가 그에겐 단순하지만은 않은 메시지로 전해진다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해 가족을 잃었다는 자책감과 고통 그리고 지독한 상실감은 끊임없이 그녀를 갉아먹었고그녀는 자신의 몸을 욕조에 담금질하며물이 욕조 밖으로 넘쳐 흐르듯 고통을 그녀 밖으로 덜어내는 과정을 반복했다.

 

매일 밤 남자를 괴롭힌 물소리는 여자의 아픔과 상처였다그러나 이 남자는 그녀의 어두운 부분까지 안아주지는 못한 것이다동거하는 동안 벗은 그녀의 몸을 보아도 일말의 성적인 동요가 일지 않았다아마도 이 남자가 사랑한 것은 지금 눈 앞의 그녀가 아닌 낯선 곳에서 신비로운 분위기에 취해 키스를 나눴던 그 때 그 곳의 그 여자였을 테다그리고 본인 역시 본능의 이끌림에 응답했던 그 공간의 그 사내가 더 이상 아니었다.

 

그는 늘 한 발짝 물러선 채 그저 관망하는 관찰자의 삶을 살아왔다심지어 아내와 연락하는 다른 남자 K의 존재를 알았을 때도 그는 분노 대신 침묵을 택했다. K는 주인공의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목숨을 끊었고 그 방법으로 ‘익사’를 선택한다본인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본인의 감정에 휩싸인 그의 머릿속에는 또 한번 ‘물’이 떠오른다.

 

다시 찾은 그녀의 집에 그녀는 없고 텅 비어버린 방에 놓여있는 욕조이 남자는 그녀가 그러했듯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옷을 벗은 채 천천히 욕조에 몸을 뉘였다조용히 물 속에 잠기며 책이 마무리된다욕조 밖으로 넘치는 물소리는 남자의 귀를 자극하고 일렁이는 물결은 남자의 몸을 덮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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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욕조에는 물 대신 이 남자의 상실감과 아픔이 채워지는 듯 하다.

 

이 남자의 사랑을 두고 ‘키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과연 누구일까?

 

 

은유적인 표현이 많았던 책이라 얇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꼭 꼭 씹어가며 읽어야 했고아마 책 후반에 실린 '작품 해설'이 없었다면 가닥조차 잡지 못하고 엉뚱한 해석을 했을 것 같다. (그것대로 재미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문장과 문장 사이에 공기는 장마철 마냥 습기를 가득 머금어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떠오르게 했고감정 상태를 분자 단위로 잘게 분해해 낱알 하나하나 읽어내려는 듯한 문체는 알랭드 보통의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를 연상케 했다초반에 몰입이 어려웠던 구간을 그대로 둔 채 지나치기도 했었는데작품 해설을 읽고 앞으로 돌아와 되짚어 가며 다시 읽는 재미가 일품이다.

 

소설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해석하는 자세에 있어 깊이를 더해 준 책이었고고뇌하며 읽은 만큼 여운이 짙게 남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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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책 속 문장들

 

욕망을 욕망 그대로 인정할 수 없는 현대인의 비극을 압축하고 있다. 삶 자체가 연기임을 매 순간 깨달아야 하는 현대인들. 우리는 혼자 있을 때 조차 연기를 한다. 혼자 있을 때조차 우리는 욕망 그대로행동하기 어렵다. 문명과 함께 진화한 인간의 연기력은 너무나 정교하게 일상화되어 있어 자신조차 스스로의 연기에 기만당하곤 한다. 자신의 연기를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하는 일이야 말로 연기가 욕망을 마침내 앞지르는 일이야말로, 자기 연기의 본원적 메커니즘일지 모른다. “구실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이 진실인 것처럼,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에야 겨우 구실이 찾아진다는 말 역시 진실인 것이다.”


이별 후에 어떤 물건들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물로 작용한다. 물건들은 어떤 시간을 상기시키고 그 시간 속에서 함께했던 어떤 사람, 어떤 사연, 어떤 약속을 불러낸다. 물건은 시간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화석이다. 그러니까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먼저 물건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당신의 흔적을 못 견뎌 하는 그녀의 태도는 당신과의 추억을 제거하겠다는 의지의 강한 표현이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물건으로부터 아직 완전한 자유를 선언받지 못했다는 고백이고, 그 물건이 상기기키는 사람을 지우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표현이기도 할 것이므로 섭섭해 할 이유가 없었다.


 

읽고 나서

타인의 사랑을 두고 키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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